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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장애인은 시험 보기 힘듭니다" 듣고 컴활 2급 딴 방법

by 쑈휴 2026. 8. 26.

"중증장애인은 시험 보기가 힘듭니다."

컴퓨터활용능력 2급 필기시험을 보려고 대한상공회의소에 방문했을 때 들은 말입니다. 저는 손을 쓸 수 없어 키보드도 마우스도 잡지 못합니다. 그래서 시험을 포기하는 대신 시험 보는 방법을 직접 만들어 제출했고, 2024년 4월 19일에 합격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자리에서 무슨 생각을 했나요?

화가 나지는 않았습니다. 담당자 입장에서는 정말로 방법이 없어 보였을 겁니다. 전례가 없으니까요.

제 상태를 먼저 말씀드려야 합니다. 저는 중증 뇌병변 장애가 있습니다. 손을 쓸 수 없습니다. 키보드를 칠 수 없고 마우스를 잡을 수 없습니다. 컴퓨터 시험장에 앉아도 아무것도 누를 수 없습니다.

그러니 "힘듭니다"라는 말은 차별이라기보다 정말로 전례가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전례가 없으면 담당자도 근거가 없습니다. 근거가 없으면 허가를 못 합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한 건 이거였습니다.

그러면 방법을 만들면 된다.

손을 못 쓰는데 어떻게 컴퓨터를 조작하나요?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원격으로 연결해서 씁니다. 침대에 누운 채 스마트폰 화면을 입술로 눌러 컴퓨터를 조작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이렇습니다.

  • 위 입술로 화면을 누르면 좌클릭
  • 아래 입술과 동시에 누르면 우클릭
  • 동시에 누른 채 위아래로 움직이면 스크롤

이게 제 마우스입니다. 이 방식으로 코딩도 하고 영상 편집도 합니다. 그러니 컴활 시험이라고 못 볼 이유가 없었습니다. 다만 시험 주관 기관이 그 사실을 모른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제출했나요?

말로 설명하는 대신 증거를 만들었습니다.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원격으로 연결해 시험을 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영상을 직접 촬영했습니다.

순서는 이랬습니다.

  1. 원격 연결 상태에서 실제로 컴퓨터를 조작하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했습니다.
  2. 그 영상을 대한상공회의소에 보냈습니다.
  3. 기관에서 심의를 진행했습니다.
  4. 심의를 통과했고, 그 방식으로 필기시험을 봤습니다.
  5. 합격했습니다. 2024년 4월 19일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순서입니다. 저는 "편의를 제공해달라"고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미 쓰고 있는 방식이 시험에서도 작동한다는 걸 먼저 증명했습니다. 기관이 판단할 재료를 제가 만들어서 넘긴 겁니다.

기관 반응은 어땠나요?

합격 후에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시험을 보는 건 처음입니다."

처음이라는 말이 저한테는 두 가지로 들렸습니다.

하나는 그동안 이런 방식으로 시험을 볼 수 있다는 걸 아무도 제안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제 전례가 하나 생겼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가 더 중요합니다. 다음에 저와 비슷한 사람이 같은 창구에 갔을 때, 담당자는 이제 "힘듭니다" 대신 "이런 사례가 있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요구"가 아니라 "제안"으로 바꾸면 뭐가 달라지나요?

담당자가 거절할 이유가 사라집니다. 요구는 담당자에게 판단과 책임을 넘기지만, 제안은 판단할 재료를 같이 건네주기 때문입니다.

이 차이가 생각보다 큽니다. 제가 "편의를 제공해주세요"라고만 했다면 담당자는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전례가 없다, 규정에 없다, 부정행위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 결론은 "어렵습니다"가 됩니다.

반대로 제가 영상을 만들어 보내면 담당자의 질문이 바뀝니다. "이게 가능한가"에서 "이 방식을 승인할 수 있는가"로 바뀝니다. 앞의 질문에는 답이 없지만 뒤의 질문에는 심의라는 절차가 있습니다.

저는 이걸 여러 번 겪었습니다. 장애가 있으면 "안 된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그 말의 상당수는 거부가 아니라 판단 근거가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근거를 만들어 가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전례가 생기면 무엇이 달라지나요?

다음 사람의 출발점이 달라집니다. 저는 "처음"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다음 사람은 "전에 이런 사례가 있었습니다"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굳이 적어두는 이유도 그것입니다. 제 합격증은 저한테만 쓸모가 있지만, 합격까지 간 경로는 다른 사람도 쓸 수 있습니다.

특히 이런 종류의 정보는 검색해도 잘 안 나옵니다. 겪은 사람이 적고, 겪은 사람도 굳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적습니다.

혹시 지금 비슷한 벽 앞에 계신다면, 그 벽이 "거부"인지 "전례 없음"인지 먼저 구분해보시길 권합니다. 후자라면 만들 수 있습니다.

참고: 시험 편의 제공을 요청하려는 분께

아래는 제 경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비슷한 상황에서 참고할 만한 일반적인 순서입니다. 기관과 시험 종류마다 절차가 다르니 반드시 해당 기관에 직접 확인하세요.

  • 요구가 아니라 제안으로 접근합니다. 담당자가 승인할 근거를 대신 만들어줍니다.
  • 글보다 영상이 강합니다. 실제로 작동하는 장면 하나가 설명 열 줄보다 낫습니다.
  • 부정행위 우려를 먼저 해소해줍니다. 어떤 방식이고 무엇이 화면에 보이는지 명확히 합니다.
  • 심의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시험 접수 일정보다 여유를 두고 문의합니다.

국가자격시험의 장애인 편의 제공 기준은 Q-Net 등 각 시행 기관 공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건 좀 자주 물어보십니다

Q. 원격으로 시험 보면 부정행위 아닌가요?

그래서 심의를 받았습니다. 제가 임의로 한 게 아니라 방식을 제출하고 기관 심의를 통과한 뒤에 응시했습니다.

Q. 영상은 얼마나 길게 찍었나요?

길이보다 내용이 중요했습니다. 원격 연결로 실제 조작이 된다는 걸 보여주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Q. 실기도 같은 방식으로 봤나요?

필기 이야기가 먼저였고 실기는 별도의 이야기입니다. 그 과정은 따로 정리해서 적겠습니다.

Q. 왜 굳이 컴활이었나요?

제가 실제로 컴퓨터로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손을 못 쓴다는 것과 컴퓨터를 못 쓴다는 건 다른 이야기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끝으로

"중증장애인은 시험 보기가 힘듭니다."

이 문장은 사실 거짓말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점까지는 정말로 힘들었습니다. 방법이 없었으니까요.

달라진 건 제가 방법을 만들어서 가져갔다는 것뿐입니다. 그러자 같은 기관이 심의를 해줬고, 시험을 보게 해줬고, 저는 합격했습니다.

전례가 없으면 내가 첫 전례가 되면 됩니다.

이 블로그에 쌓는 글들은 대부분 그런 기록입니다. 안 된다고 들었던 걸 되게 만든 과정입니다.


이 글은 제가 2026-04-04에 스레드에 올리고 직접 겪은 일을, 빠졌던 맥락과 확인 방법까지 더해 다시 쓴 글입니다. 원문은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 원본 스레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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