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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LPT N3 89점의 실전: 전철에서 만난 할머니와의 4마디 대화

by 쑈휴 2026. 3. 1.

난카이 전철이 간사이 공항역을 출발하고 창밖으로 오사카만의 바다가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역무원의 슬로프 서비스 덕분에 무사히 탑승한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기획자로서의 또 다른 도전이 제 앞에 불쑥 나타났습니다. 바로 '일본어로 현지인에게 말 걸기'였습니다.

1. 대학 교양 A+에서 YOASOBI 덕질까지 — 나의 일본어 여정

사실 저와 일본어의 인연은 꽤 깁니다. 2021년 1학기, 4년제 대학교에서 교양 과목으로 '일본어 기초'를 수강했는데, 히라가나부터 기본 문법까지 성실하게 공부한 결과 A+라는 성적을 받았습니다. 매일 밤 침대에 누워 입술로 스마트폰을 터치하며 단어를 외우고 문장을 따라 읽었던 그 시간들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불이 붙은 것은 그 이후였습니다. 2022년 8월, 우연히 일본 음악 듀오 YOASOBI(요아소비)의 노래를 접하고 완전히 빠져들었습니다. 「夜に駆ける(밤을 달리다)」, 「アイドル(아이돌)」 등 그들의 음악을 가사까지 이해하고 싶다는 욕심이 일본어 공부의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되었습니다.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원어로 이해한다는 것, 그것은 교과서 100권보다 강한 학습 엔진이었습니다.

그렇게 약 3년간 독학을 이어온 끝에, 2025년 7월 JLPT(일본어능력시험) N3에 도전했습니다. 결과는 89점. 합격 기준인 95점에 단 6점이 모자라 아쉽게 불합격했습니다. 솔직히 속상했지만, 시험장에서 문제를 읽고 이해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4년 전 히라가나도 몰랐던 저에게는 엄청난 진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89점의 실력이 과연 실전에서 통할까? 이번 오사카 여행이 곧 그 시험대가 될 터였습니다.

다만 걱정이 하나 있었습니다. 저는 발음이 다소 부정확한 편이라 한국어로 말해도 상대방이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물며 일본어로 말한다면? '혹시 내 발음을 전혀 못 알아들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항상 마음 한구석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스마트폰에 번역기 앱을 미리 설치해 두었습니다. 말이 안 통하면 번역기를 보여드리면 된다는 보험이었습니다.

2. 번역기의 함정 — "글자가 작아서 안 보여요"

17시 25분쯤, 열차가 한창 달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휠체어 공간 옆 좌석에 한 일본인 할머니가 앉아 계셨습니다. 저는 순수한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이 분도 난바까지 가시려나?' 단순한 궁금증이었지만, 동시에 여행 중 처음으로 현지인에게 말을 걸어보는 도전의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먼저 안전한 방법을 택했습니다. 어머니에게 번역기 앱을 열어달라고 부탁했고, 한국어로 "혹시 어디서 내리시나요?"를 입력해 일본어로 변환된 화면을 할머니에게 보여드렸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小さくて見えないわ」 (치이사쿠테 미에나이와 — 글자가 작아서 안 보여요)

할머니는 스마트폰 화면의 작은 글자가 잘 보이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순간 당황했습니다. 번역기라는 보험이 무용지물이 된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이것이 오히려 기회라는 생각이 번뜩 스쳤습니다. '번역기가 안 되면, 내 입으로 직접 말해보면 되잖아.'

3. 떨리는 목소리로 내뱉은 첫마디

저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머릿속에 저장해둔 문장을 꺼내 또박또박 말했습니다.

"もし、どこで降りますか?" (혹시, 어디서 내리세요?)

심장이 쿵쾅거렸습니다. 내 발음이 과연 통할까? 한국어로도 상대방이 못 알아듣는 경우가 있는데, 일본어는 더 힘들지 않을까?

그런데 할머니가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제 말을 알아들으신 것입니다!

「最後に」 (사이고니 — 마지막에요)

"마지막 역"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저는 확인차 한마디 더 여쭤보았습니다.

"なんば駅?" (난바역이요?)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같은 종착역이라는 사실에 괜히 동지애가 느껴졌습니다. 할머니도 저를 보며 미소 지으셨고, 저도 모르게 얼굴에 활짝 웃음이 번졌습니다.

4. 고작 4마디, 하지만 인생의 4마디

누군가에게는 "어디서 내리세요?" / "글자가 작아서 안 보여요" / "마지막에요" / "난바역?" 이 네 마디가 대단할 것 없는 초보적인 대화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이 4마디는 의미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저는 발음이 부정확합니다. 한국어로 말해도 2~3번 반복해야 상대방이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제가 외국어로, 외국인에게, 단 한 번에 전달이 되었습니다. 할머니가 한 번도 되묻지 않고 바로 대답해 주셨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말 그대로 '기적'이었습니다.

어쩌면 할머니는 제 발음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셨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차이를 탓하기보다 제 말에 귀를 기울이고, 문맥으로 이해하고, 따뜻하게 반응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여행에서만 만날 수 있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선의라고 생각합니다.

5. 기획자의 현지 소통 꿀팁

이 경험을 통해 얻은 휠체어 여행객을 위한 일본어 소통 팁을 정리합니다.

📱 번역기는 만능이 아닙니다

  • 연세가 있으신 분에게는 스마트폰 화면의 작은 글자가 잘 안 보일 수 있습니다.
  • 글자 크기를 미리 최대로 키워놓거나, 핵심 문장을 큰 글씨로 메모장에 적어두는 것이 좋습니다.
  • 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역시 직접 입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 일본 사람들은 외국인의 서툰 일본어에 대체로 호의적입니다.
  • 문법이 틀려도, 발음이 부정확해도 핵심 단어만 전달되면 대부분 알아들어 주십니다.
  • 자신감을 갖고 또박또박 말하는 것이 더듬더듬 완벽한 문장을 만들려는 것보다 효과적입니다.

📝 여행 필수 일본어 5문장

한국어 일본어 발음
어디서 내리세요? どこで降りますか? 도코데 오리마스카?
화장실은 어디예요? トイレはどこですか? 토이레와 도코데스카?
이거 얼마예요? これはいくらですか? 코레와 이쿠라데스카?
도와주세요 お手伝ってください 오테츠닷테 쿠다사이
감사합니다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아리가토 고자이마스

마무리하며

번역기가 통하지 않았던 그 순간, 포기하지 않고 직접 입을 열었던 것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였습니다. 대학 교양 수업에서 히라가나를 처음 배우고, YOASOBI의 가사를 따라 읽으며 키워온 일본어가 오사카행 전철 안에서 진짜 사람에게 전달되는 순간, JLPT 89점의 아쉬움은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시험 점수로는 불합격이었지만, 할머니 앞에서는 당당히 합격이었습니다.

할머니와의 짧은 대화가 끝나고 창밖을 바라보니, 어느새 오사카 시내의 빽빽한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난바역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고작 4마디였지만, 그 4마디가 앞으로 2박 3일 동안 일본어로 부딪혀 볼 용기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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