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오사카 여행 3일 차 (4): 잘못 탄 하루카 열차 대탈주극과 안도의 한마디

by 쑈휴 2026. 3. 7.

덴노지역의 미로 같은 지하 통로에서 길을 잃고 현금 충전기를 못 찾아 진땀을 뺐던 것도 잠시, 정말 천사처럼 구세주로 등장해주신 어느 친절한 일본 역무원 여직원 분의 기적 같은 '키오스크 이코카(ICOCA) 카드 쾌속 3장 동시 마법 충전' 도움을 적재적소에 받아 무사고로 공항 편 넉넉한 귀환 교통비를 든든하게 채운 우리 불굴의 수동 휠체어 가족! 허겁지겁 시계를 확인한 오후 2시 20분경, 그제야 살았다는 듯이 쭈그러들었던 어깨를 한껏 활짝 펴고서 거친 마찰음을 내는 15kg짜리 캐리어를 질질 끌며 간사이 국제공항행 특급열차, 이른바 여행객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JR 하루카(はるか)' 승강장 탑승구 선 앞까지 한껏 자신만만하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무사히 당도해 섰습니다. 공항 활주로 터미널 앞 수속 카운터까지 환승이고 나발이고 한 치의 귀찮음 없이 단박에 한 번에 쏘아준다는 이 전설의 직통 배리어프리 특급열차만 제시간에 탑승한다면, 이제 오사카 2박 3일 귀국 비행기 수속은 문자 그대로 떼어 놓은 당상이자 식은 죽 먹기 미션의 완성 판이었으니까요.

덴노지역에서 간사이공항역 구글맵 검색
덴노지역에서 간사이공항역 구글맵 검색

1. 하루카 열차 승강장의 기괴한 불협화음: 어? 헬로키티 어디 갔어?

제가 여행 출발 몇 달 전부터 침대에 고정된 채 밤마다 눈이 빠져라 스마트폰 인터넷으로 치밀하게 공부하고 기획해 둔 수백 건의 네이버 블로그 리뷰 사진들과 유튜브 일본 기차 탑승 브이로그 영상 자료들에 의하면, 이 'JR 하루카 특급 기차'라는 녀석은 누가 봐도 저 멀리서 진입할 때부터 단박에 공항 철도임을 아주 명확하게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끔 외관부터 실내 디자인 의자 시트커버 내관까지 온통 아주 핑크빛 화려하고 앙증맞은 '헬로키티(Hello Kitty)' 고양이 얼굴 캐릭터 스티커 굿즈들로 무지막지하게 도배되어 있어야만 아주 정상적인 것이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키티 열차가 짜잔 하고 승강장에 멈춰 들어서면, 그 예쁜 분홍빛 풍경을 배경으로 고생하신 엄마, 아빠 두 분을 아주 화사하고 귀엽게 투샷 부부 뽀뽀 사진 한 방 예쁘게 꼭 찍어 드리고 말아야지!' 하며 혼자 내심 효도 스러운 흉계를 꾸미고 몹시 뿌듯한 기대를 잔뜩 품은 채, 위풍당당하게 휠체어 바퀴를 고정하고 승강장 안전선 맨 앞줄 첫 번째 자리에 멈춰 서서 열차 진입을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 2분의 짧은 침묵이 지나고 곧이어 시끄럽고 육중한 철로 마찰음 소음 굉음과 함께 저희가 예매한 도착 시간에 딱 맞춰 미끄러지듯 스르륵 승강장 앞마당으로 천천히 진입하며 멈춰 선 이 거대한 금속 열차의 출입구 문턱을 우연히 본 순간. 저의 부푼 설렘으로 띠용 했던 눈동자는 그만 차갑게 식어버리며 그 자리에서 꼿꼿하게 목석처럼 얼어붙어 굳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제 상상 속 핑크빛 깜찍이 고양이는 아예 꼬리털 하나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겉면이나 창문 그 어디에도 키티 무늬 하나, 캐릭터 스티커 하나조차 찾아볼 수 없는 아주 칙칙하고 평범하며 무미건조한 쇳덩이 회색빛의 밋밋한 일반 전철 깡통 여객 열차가, 저희 앞 발등을 향해 떡하니 차가운 앞문통을 스윽 하고 개방하며 열어젖힌 채 무서운 정적과 함께 대기하고 서 있었던 것입니다.

"뭐, 뭐지 이거? 내 눈이 삔 건가? 이거 인터넷이랑 다르게 헬로키티 캐릭터가 단 한 개도 안 그려져 있는데 하루카 기차 맞나? 혹시 공항으로 안가는 느려터진 일반 열차나 완행 똥차가 굴러 들어온 거 아니야?"
"아들, 야 성용아. 이 기차 지금 당장 우리가 타야 하는 거 맞아? 이거 타면 비행기 시간 맞춰서 공항으로 바로 가는 특급 철도 맞는 거야? 느낌이 이상한데?"

아주 작고 미세한 동선 오차나 환승 삑사리 단 한 번에도, 계단을 오르내리기 힘든 휠체어 이용객의 특성상 그날 비행기 타는 일정이 전부 도미노처럼 통째로 박살 나며 치명적으로 돌이킬 수 없이 꼬여버릴 수 있는 저희 장애인 가족의 극한 상황이었습니다. 제 마음속에서는 '오늘 공항행 실패다'라는 공포와 불신, 혼란의 불안 게이지 사이렌이 그 핑퐁 소리도 시끄럽게 아주 급격하고 미친 듯이 수직 상승하며 마구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2. "시간이 없습니다!" 바쁘게 사라진 첫 번째 역무원과 두 번째 구세주

핑크빛 헬로키티는 온데간데없고 정체불명의 밋밋한 깡통 기차만 덩그러니 펼쳐진 승강장 앞에서 극도로 멘탈이 당황한 저와 부모님. 이게 대체 우리가 타야 할 공항 직통 하루카가 맞는 건지 전혀 분간이 안 되는 피눈물 나는 상황에서, 승강장 바깥 통로 쪽을 아주 바쁘게 경보로 혼자 걸어가고 있는 뒷모습의 한 일본인 철도 제복 역무원 아저씨의 옷 소매 끄트머리를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다급히 부르다시피 육성으로 거의 비명 지르듯 잡아 세웠습니다.

"아저씨!! 스, 스미마셍! 익스큐즈미 써얼!! 간사이 에어포트? 이 기차 간사이 에어포트 고??"

그런데 그 역무원 아저씨 분은 저희의 그 절박한 질문을 듣고도, "시간이 없습니다! (時間が無いです! 지칸가 나이데스!)"라는 짧고 단호하며 날카로운 한마디만 남기시고는 앞만 보고 바쁘게 총총걸음으로 사라져 버리셨습니다. 나중에야 돌이켜보니, 아마 그 순간 교대 시간이 급박하게 임박했거나 혹은 열차 출발 신호 점검을 해야 하는 등 역무원으로서 절대 빠져선 안 되는 바쁜 업무 한복판이셨기에, 저희의 애절한 절규에 발걸음을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으셨던 아쉬움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사카 여행 1일 차 도착 첫날부터 오늘 3일 차 이 순간 직전까지 역무원들의 그 따스하고 배려 넘치며 손발 다 걷어붙였던 '묻지 마 배리어프리 전담 마크 VVIP' 서비스에 한껏 꿀 빨듯이 익숙해져 달콤한 꿈을 꾸고 있던 저희 한국 촌놈 가족이었기에, 그 급박하고 건조한 '시간이 없다'는 한마디는 길 가다 뒤통수를 세게 해머로 한 대 얼얼하게 얻어맞은 듯 적잖은 당혹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그 아저씨를 탓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일본의 철도는 초 단위로 돌아가는 시스템이니까요.

그래서 저희는 기죽지 않고 정신을 다시 부여잡아, 주위를 두리번두리번거리며 도움을 줄 수 있는 또 다른 역무원을 필사적으로 수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행히도 근처를 순찰하듯 걸어가시던 두 번째 역무원 한 분을 간신히 붙잡아 세울 수 있었습니다. 파파고 앱을 켜서 타이핑할 시간조차 아까웠기에, 이번에도 역시 스마트폰 화면에 '간사이 공항(関西空港)' 글자를 띄워놓고 손가락질과 바디랭귀지를 총동원하여 절박하게 아우성을 쳤습니다. 두 번째 역무원분은 고개를 끄덕이시며 지금 문이 열려 대기 중인 이 열차를 한번 슥 보시더니, 자신 있게 손짓으로 타라는 제스처를 보내 주셨습니다.

3. 공항행 열차가 아닙니다! 대환장 호러 환승 탈주극의 서막

역무원분의 확인 사인을 받은 저희 가족은, 어찌 되었든 당장 비행기 공항 출국 탑승 마감 시간이 목구멍을 조여오듯 등 뒤 코앞까지 다가오고 쫓기는 피 말리는 처지였기에, 더 이상 고민하고 따질 여력이 없었습니다. 저희 어머니와 아버지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눈이 반쯤 뒤집힌 채, 15킬로짜리 육중한 대형 캐리어 덩어리를 양팔에 우격다짐으로 끼워 넣고 잠들어버린 듯한 제 육중한 수동 휠체어까지 한꺼번에 싸잡아서, 일단 지금 우리 가족 눈앞에 아가리를 벌려진 채 대기 중인 그 수상할 정도로 평범하고 밋밋하고 투박한 깡통 기차 문틈 사이로 미친 듯이 거의 던지다시피 다급하게 우겨 넣으며 우당탕탕 엎어지듯 간신히 기차 객실 열차 바닥 위로 올라탔습니다.

아버지가 뻘뻘 흐르는 땀을 거친 손등으로 훔쳐 닦으며 기차 자리 한편 통로 모서리에 대형 캐리어를 주차 박아놓으시고, 흔들림 방지를 위해 제 휠체어 쇠 브레이크를 딸깍 달칵 소리 나게 아주 야무지게 채우며 허겁지겁 짐 정리를 하고 계실 딱 그 숨 막히는 침묵의 찰나 타이밍이었습니다. 뭔가 형언할 수 없는 아주 기분 더럽고 알 수 없는 찝찝하고 싸늘한 공동묘지 같은 기운이 저희 가족의 등골을 쐐액 스치듯 지나갔습니다. 저는 살인적인 직감으로 불안감에 고개를 휙 돌렸고, 곧 문을 무정하게 닫기 위해 삐 소리를 내며 대기 중인 그 수상한 열차 입구 출입문 앞 근처 통로에 멀뚱히 서 계시던 한 분의 인상 좋은 또 다른 선량한 현지 일본 시민(혹은 다른 부서 관계자 안내원 할아버지 분)을 아주 극적으로 간절하게 눈에 띄듯 발견하고 목격했습니다. 저는 그 할아버지를 향해 스마트폰 파파고 번역기를 켜고 자판을 타이핑할 단 1초의 낭만적인 시간조차 없었기에,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신체 부위인 고개를 까딱이며 턱을 있는 힘껏 덜덜덜덜 위아래로 흔들거리고, 거의 피를 토하며 울부짖듯 필사적인 콩글리시 옹알이 발작 바디랭귀지 수화를 기관총처럼 갈겨댔습니다.

"디스! 아저씨 간사이 에이포트? 유 노 간사이? 미나미 에어포트 오사카 인터내셔널?? 플라이트!! 디스 깡통 트레인, 빙빙 돌아 간사이 방향 고 스트레이트 오케이???"

그러자 제 절규를 가까이서 들은 그 일본인 할아버지 시민분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아니면 폭발 직전의 시한폭탄을 본 듯한 표정으로 화들짝 눈이 튀어나올 듯 놀라시며, 얼굴이 창백해진 채로 자신의 두 손과 팔을 엑스(X)자로 좌우로 아주 강력하게 파닥파닥 휘저으며 발작적으로 외치셨습니다.

"노!! 엑스엑스 노오오우!! 낫 에어포트!! 이 기차는 절대로 공항으로 직진하는 열차가 아닙니다!!! 엑쓰 노오!!!!"

오. 마이. 지저스. 맙소사. 세상에 이런 엄청난 청천벽력 호러 괴담 같은 비극이 또 있을까요!! 아까 두 번째 역무원분에게 분명 타라는 확인을 받고 올라탔건만, 진짜 공항행 열차가 아니라 전혀 다른 노선의 일반 열차였다니! 만약 저희 가족이 그 일본인 어르신의 다급한 몸짓 언어인 "노(No)"를 듣지 못한 채 눈 감고 안도하며 좌석에 퍼질러 앉아 안심하고 있었다면? 그래서 단 1분이라도 눈치 없게 이 수상한 기차가 이대로 문을 닫아버린 채 역방향으로 출발해버려 시야에서 철로가 시원하게 전진해 버렸다면? 그렇다면 저희 거북이 환자 수동 휠체어 가족 3인방은 그날 공항 비행기가 있는 영광의 방향이 아니라, 오사카 현지 도심지 어딘가 완전 정반대 방향인 알 수 없는 듣보잡 동네 첩첩산중 민영 철도 지하철역 땅끝마을 그 어딘가로 강제로 엉뚱하게 질주하고 납치되는 엄청난 대형 사고와 피눈물 나는 귀국 실패 사태의 지옥문과 고스란히 직면하고 마주할 참이었습니다!! 시간은 이미 땡땡거리며 비행기 탑승 마감 시각으로 다가오며 초침이 목을 조르는데, 말 한마디 안 통하고 돌아올 기약 하나 없는 어느 아무도 없는 산 구석 시골 민영 역사 한가운데에 버러지처럼 미아 가족으로 철저히 고립되어 뚝 떨어질 뻔했던 상상만 해도 살점이 떨리는 가장 끔찍하고 아찔한 절대 절명의 순간. 저희 아버지는 그 찰나의 '노(No)' 소리를 본능적 감각으로 캐치해 내자마자 엄청난 빛과 같은 반사 신경과 괴력의 아드레날린 파워 엔진을 폭발시키며 발휘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양손으로 그 육중한 15킬로짜리 대형 캐리어 1개를 한 손에 움켜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제 휠체어 손잡이를 번쩍 잡아채 통째로 급히 끌어내서는, 땡땡 울림 기계음을 내며 표독스럽게 스르륵 닫히려는 그 끔찍한 기차 철문 문틈 사이의 좁은 틈새로, 제 머리가 부딪힐 뻔한 위기를 뚫고 온 식구가 그야말로 처절하고 필사적으로 기적의 몸부림인 위대한 탑승 탈출극 대탈주(Great Escape)를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우당탕탕 바닥을 구르며 감행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기적의 순간, 승강장 바닥 위에 식은땀에 젖은 패잔병처럼 흐느적 주저앉아 헐떡거리는 저희 가족 앞에 세 번째 천사 같은 역무원 분이 아주 극적으로 등장하셨습니다. 아까 그 할아버지 시민분의 다급한 '노(No)' 사인 소동을 보았는지, 혹은 저희의 영화 같은 대탈주극 생중계를 쫓아오셨는지, 이번 역무원분은 거친 숨을 몰아쉬는 저희 가족에게 다가오시더니 스마트폰 번역기로 차분하게 올바른 간사이 공항행 열차 승강장 위치를 정확하고 친절하게 안내해 주셨습니다.

4. 한국인 관광객의 모국어 한마디 안도에 긴장이 풀려 실신하다시피 쿨쿨

세 번째 역무원분의 정확한 안내에 온몸이 비 오듯 식은땀 생지옥 물로 흠뻑 젖은 채로도 감사의 인사를 90도로 꾸벅 올리고, 그 정체불명의 저주받은 엉뚱한 기차에서 가까스로 생명을 건져 뽑아낸 짐과 캐리어와 휠체어를 다시 추스르며, 세 번째 역무원분이 가리키신 방향으로 고개를 힘겹게 돌린 저희의 눈앞에 드디어 저 멀리 다른 반대쪽 플랫폼 방향 전광판 불빛 사이로, 그토록 그립고 사무치게 우리가 찾던 진짜 '비행기 그림'이 아주 선명하고 확실하게 번쩍번쩍 빛나게 디지털 픽셀로 그려져 있는 진짜 '간사이 공항행 열차 승강장' 안내 지시선 사인이 십자가 구세주처럼 거룩하게 우리 가족의 눈동자 시야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저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짐 가방과 끊어질 것 같은 허리 고통을 부여잡고 미친 듯이 바퀴의 불꽃을 내며 헉헉거리면서, 그 진짜 올바른 열차를 향해 한 편의 좀비 추격전처럼 허겁지겁 마지막 남은 생명줄 잡듯 잡아타고 겨우 남은 빈 휠체어 전용석 자리를 간신히 쟁취하여 잡고 나서도, 여전히 저희 부모님과 제 심장 박동수는 아까 그 방금 전 코앞에서 겪은 지옥 같은 문틈 대탈주 귀국 위기 사태로 인해 여전히 주체할 수 없이 '쿵쾅쿵쾅' 비트가 폭주하고 원래 호흡으로 돌아올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숨을 오르락내리락 파르르 달달 떨고 있었습니다. 정말로 이 기차가 제대로 공항 터미널 발권 카운터로 가는 공항열차가 맞긴 한 건지, 아까 전 밋밋했던 열차처럼 또 이 열차 사기에 속은 건(?) 아닌지 의심병 환자처럼 계속 주변 눈치와 차창 밖 표지판만 두리번두리번 곁눈질 거리며 극도의 불안감 시한폭탄 마음속에서 달달 바들바들 떨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저희가 그 공포에 질려 옹기종기 손을 잡고 있을 무렵. 저희 등 뒤편 옆 뒷좌석 통로 주변 자리에 얌전히 조용히 이어폰을 꽂고 앉아있던 한국 국적의 젊은 한국인 관광객 청년 한 분이, 아까 승강장에서 저희 시트콤 가족의 그 땀내 나고 처절하고 코믹했던 덤앤더머 환승 짐 보따 대탈주극 투맨쇼 생중계를 밖에서부터 전부 다 조용하게 목격하고 눈으로 감상하고 계셨던 모양이었습니다. 그 청년분은 얼굴이 하얗게 노랗게 번갈아 질려 이마에 핏대가 선 채 잔뜩 어깨를 움츠리고 쫄아있는 저희 식구를 향해 자상하고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습니다. 그러더니, 마치 저 멀리 고향의 어머니가 따끈한 된장찌개를 끓여놓고 부르는 듯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따스한 대한민국 정통 한글 표준어로 저희에게 부드럽게 한마디를 툭 하고 던져 위로해 주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 기차 간사이 공항으로 똑바로 직행해서 가는 거 확실하게 맞아요. 가족분들, 이제 그만 불안해하지 마시고 마음 푹 편히 놓으세요."

아... 바로 그 기적의 순간!! 제 귓가와 뇌리를 관통하여 울려 퍼지는 그 지극히 익숙하고 평범한 '모국어' 한국말 단어 한 문장의 위력과 부드러움이 그날따라 얼마나 웅장하고 성스러운 구원의 나팔 소리처럼 영롱하게 들리던지요! 비로소 지난 며칠간 가슴에 꽁꽁 틀어막혀 응어리졌던 모든 길 찾느라 쫄렸던 긴장과 혹시나 열차를 놓칠까 벌벌 떨었던 불신, 미끼를 물었던 서러움이 안도감이라는 감정과 동시에 뜨거운 눈보라처럼 스르륵 어깨에서부터 녹아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고야 천만다행이다, 우리 진짜 비행기 타고 살아서 집에 갈 수 있다." 저희 엄마 아빠 어리숙 덤앤더머 삼인방 셋은 그제야 눈도 못 마주치던 얼굴을 비로소 마주 보며 너무 어이없어서 허탈한 박장대소를 미친 듯이 터뜨렸고, 목에 걸려 죽었던 숨을 후하후하 아주 깊고 편안하게 안심하며 몰아쉬었습니다.

한순간 식은땀 작렬하며 목숨과 귀국을 걸고 도박을 벌였던 오후 2시 20분의 그 덴노지역 희대의 오탑승 패닉 대참사 사태를 아주 아슬아슬하게 살 떨리는 무사 극복으로 넘긴 엄청난 심리적 보상 덕분일까요? 그 청년의 한국어 모국어라는 따뜻한 안도감의 보상과, 3일 치 축적되었던 전신 육체적 피로감이 한꺼번에 동시에 무서운 쓰나미처럼 몰려온 저희 바보 가족은, 이내 의탁할 데 없는 그러나 아주 편안한 열차의 포근하고 푸근한 의자 등받이 쿠션에 온몸 뼈다귀를 흐물거리는 오징어처럼 녹여 파묻은 채. 간사이 공항 플랫폼에 열차 안내 방송이 도착할 때까지 한 시간 내내 저희 가족 그 누구 하나 중간에 눈꺼풀을 단 1미리도 깰 것 없이 아주 기절하듯 달디단 깊고 긴 꿀잠의 침 흘리는 늪으로 황홀하게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공항 개찰구를 나올 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세 번째 역무원분이 안내해주신 이 열차는 원래 저희가 타려던 비싼 하루카 특급이 아니라 훨씬 저렴한 공항급행열차였습니다. 일본 지하철은 나올 때 정산하는 시스템이라 이코카 카드에서 하루카 요금 대신 급행열차 요금만 빠져나갔고, 덕분에 예상보다 넉넉한 잔액이 고스란히 남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헬로키티 핑크빛 하루카의 꿈은 산산조각 났지만, 지갑 사정은 오히려 예상 밖의 횡재를 안겨준 셈이니 인생 참 알 수 없는 거죠! 아, 스릴 만점 무섭고도 끔찍하고 아름다웠던 오사카 철도의 환승 맛이여!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휠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