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2박 3일 일정의 휠체어 자유여행 마지막 날인 9월 28일 일요일 아침이 밝았습니다. 어제 하루 종일 전철을 타고 난바에서 훌쩍 벗어나 교토 아라시야마 치쿠린 대나무 숲을 당일치기로 정복하고 돌아왔던 탓에, 온 가족의 체력은 그야말로 거의 방전 상태에 가까웠습니다. 심지어 아버지와 저는 늦은 밤 피곤에 지쳐 잠드신 어머니 몰래 편의점까지 다녀오는 소소한 비밀 일탈까지 감행했을 정도로 꽉 찬 일정을 소화했죠. 그 덕분인지 저희 세 식구는 침대에 눕자마자 밤새 단 한 번도 깨지 않고 기절하듯 깊은 숙면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꿀맛 같은 잠에 취해 있다가 8시 20분경, 무척이나 개운하고 상쾌한 기분으로 마지막 날의 눈을 번쩍 떴습니다. 침대에서 밍기적거리며 창밖을 내다보니, 맑고 청명한 태양 빛이 비치다가도 갑자기 흐린 먹구름이 몰려들고, 그러다 다시 구름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오는 등 한 치 앞을 예상하기 힘든 오묘하고 변화무쌍한 가을 하늘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마치 살짝 비 냄새를 머금은 듯 촉촉한 오사카의 아침 공기는, 이제 곧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진한 아쉬움을 한층 더 자극하는 듯했습니다.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은 언제나 그렇듯 지나간 시간의 달콤함과 다가올 작별의 씁쓸함이 교차하는 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곤 합니다.

1. 세 식구의 각기 다른 취향, 23층 스카이뷰 조식 만찬
마지막 날의 든든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아침 8시 44분, 저희 가족은 부스스한 얼굴을 매만지며 24층 객실에서 그동안 정들었던 23층 조식 전용 식당으로 부지런히 내려갔습니다. 넓은 통유리로 오사카의 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이곳에서의 아침 식사는 매번 가슴을 탁 트이게 만들어주었죠. 평소 식성이 확고하게 다른 저희 세 식구는 마지막 날 아침에도 어김없이 각자의 취향을 가득 담아 각기 다른 모습의 뷔페 접시를 완성해 나갔습니다.
어머니의 접시는 언제나 그렇듯 가장 푸짐하고 입체적이며 화려했습니다. 식욕을 돋우는 폭신폭신한 일본식 계란말이 1조각과 고소한 참치를 듬뿍 넣은 특제 계란말이 1조각을 필두로, 따뜻한 국물이 일품인 우동, 짭조름한 베이컨, 향긋한 연잎쌈밥, 촉촉한 교자 만두, 신선한 회 한 점, 바삭한 튀김 꼬치, 육즙이 살아있는 가라아게(닭튀김), 그리고 후식으로 상큼한 요플레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한·일·양식 통합 코스 요리를 준비하셨습니다. 첫 접시를 뚝딱 비우신 어머니는 9시 22분경, 입맛에 딱 맞으셨는지 교자 만두와 부드러운 연어알, 신선한 회, 그리고 가라아게를 한 접시 더 추가로 담아 오실 정도로 호텔 조식을 200% 만끽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반면, 평소에도 혹독하게 식단을 관리하시며 건강을 최우선으로 챙기시는 아버지는 마지막 날에도 아주 철저하게 건강식과 생과일 위주의 식단을 고수하셨습니다. 상큼한 키위, 과즙이 풍부한 파인애플, 달콤한 오렌지와 멜론, 포도 등 뷔페 라인에 있는 거의 모든 과일을 섭렵하셨습니다. 거기에 신선한 방울토마토, 아삭한 파프리카, 매운맛을 뺀 양파, 부드럽게 으깬 감자 샐러드로 식이섬유를 든든하게 채우셨고, 단백질 보충을 위해 매콤한 마파두부, 두툼한 회, 그리고 두 종류의 계란말이까지 곁들여 누구보다 완벽한 영양 밸런스의 정석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휠체어에 가만히 앉아 소화력이 다소 떨어질 수밖에 없는 저는, 상큼하고 시원한 오렌지 주스와 색감이 진한 포도 주스를 연거푸 들이켜며 목을 축였습니다. 그다음 부드러운 화이트 도넛과 폭신한 모닝빵을 골라 그 위에 새빨간 딸기잼을 듬뿍 발랐습니다. 여기다 부드럽게 입에서 녹아내리는 연어회 한 점과 과일들을 조금 곁들이니, 평소 입이 짧은 저에게조차 그 어떤 진수성찬 부럽지 않은 가벼우면서도 달콤한 저만의 특별한 오사카 밥상이 완성되었습니다.
2. 아버지가 전하는 전망대급 도톤보리 기상 브리핑
9시 17분경, 아버지께서 든든하게 배를 채운 후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제 모습을 당신의 스마트폰 카메라에 한 컷 예쁘게 담아주셨습니다.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나니 비로소 주변 경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9시 19분, 아버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핸드폰 카메라를 들고 23층 식당의 거대한 통유리창 너머로 훤히 내려다보이는 오사카 시내의 훌륭한 전망을 영상으로 생생하게 담기 시작했습니다. 영상 속에는 아버지 특유의 중후하고 안정감 있는 목소리로 진행되는 한 편의 '오사카 기상 브리핑' 내레이션이 고스란히 녹음되었습니다.
"자, 이곳 호텔 식당에서 내려다본 오사카의 아침 모습입니다. 저쪽 멀리에 동그랗고 큼지막한 돈키호테 관람차가 선명하게 보이죠? 노란색으로 칠해진 상징물입니다. 이쪽은 도톤보리 끝쪽 유흥가의 모습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각도이고요... 그 밑으로는 자동차 도로가 시원하게 지나가는 모습이 잘 보입니다. 가만히 내려다보면 한국의 도심에 사는 거나 여기 일본 거리에 사는 거나, 빽빽한 아파트와 인프라 건물들은 크게 별 차이가 없죠? 허허. 오늘은 날씨가 먹구름이 좀 끼고 흐린 구석이 있어서 아주 맑고 화창한 뷰가 아닌 게 살짝 맘에 들진 않지만, 아침 식사 겸 잠시 내려와서 여유롭게 시내를 한번 쭉 둘러보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브리핑은 렌즈의 방향을 이리저리 돌리며 아주 흥미롭게 계속되었습니다.
"여기는 도로의 차들이 한쪽 뱡향으로만 일관되게 쫙쫙 시원하게 빠지네요. 한국처럼 가는 길 따로, 오는 길 따로 있는 왕복선 구조가 잘 안 보이고, 거대한 블록 단위로 한쪽 방향으로 물 흐르듯 올패싱(All-passing) 하는 그런 일방통행 스타일 도로가 꽤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카메라를 저 밑으로 쭉 내려보면, 길쭉한 또랑 같은 도톤보리 강물길이 보이죠? 저쪽 물길을 따라 둥둥 배가 다니는 관광 코스입니다. 지금 이 아침 시간에는 배가 한 대도 보이지 않고 조용하지만, 저녁이나 야간 시간이 되면 아주 활발하게 수많은 노란 유람선들이 관광객을 가득 싣고 줄지어 지나가면서 네온사인을 구경하는 그런 화려한 코스가 되겠습니다."
불과 그저께 밤, 저희 가족이 수만 명의 인파를 뚫고 휠체어 바퀴를 요리조리 굴리며 아슬아슬하게 헤집고 다녔던 도톤보리의 그 복잡하고 정신없던 좁은 골목과 강변 산책로가, 이렇게 23층 하늘 위에서 따뜻한 홍차 한잔을 마시며 내려다보니 마치 자그마한 장난감 레고 마을처럼 한눈에 쏙 들어와 너무나 고요하고 평화롭기 그지없었습니다. 아래에서 직접 땀 흘리며 부딪혔던 그 치열했던 생동감과, 위에서 내려다보는 압도적인 여유로움의 대비가 참으로 짜릿하게 다가왔던 순간이었습니다.
3. 마지막 배리어프리룸 앵콜 영상과 아쉬운 짐 싸기
조식을 기분 좋게 마무리하고 발걸음을 돌려 저희가 묵고 있는 정든 24층 객실로 돌아왔습니다. 9시 53분, 그냥 짐만 챙겨서 이 호텔 방을 훌쩍 떠나기가 못내 아쉬웠던 참에, 저는 어젯밤 피로에 절어 미처 완벽하게 구석구석 남기지 못했던 '호텔 몬토레 그라스미아 오사카 배리어프리룸(장애인 전용 객실)'의 디테일한 구조 소개 영상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아주 꼼꼼하게 재촬영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단순한 기록의 의미를 넘어서, 나중에 인터넷에 글을 올렸을 때 일본 휠체어 자유여행을 겁내고 있는 다른 누군가에게 이 넓은 화장실과 절대적인 무단차 제로(턱이 아예 없는)의 가벼운 미닫이문 구조가 얼마나 큰 위안과 도움이 되는지 꼭 알리고 싶은 기획자의 얄팍한 사명감 때문이었습니다. 영상 속에서 저는 휠체어에 앉은 넓은 시야에서 방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침대 사이의 널찍한 통로 공간, 휠체어 바퀴가 물을 밟고도 미끄러지지 않도록 특수 처리된 욕실 바닥, 변기와 욕조 주변에 설치된 튼튼한 금속 안전 손잡이, 그리고 침대 옆의 낮은 비상호출 버튼까지 세심하게 카메라에 담아냈습니다.
만족스러운 앵콜 리뷰 영상 촬영을 완전히 마치고 나니, 이제 정말 남은 것은 무심한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짐을 싸는 일뿐이었습니다. 수명이 다한 치약과 샴푸 껍데기들을 분리수거하고, 3일 동안 세 식구의 허물을 담았던 무거운 캐리어에 옷가지와 기념품들을 테트리스처럼 빈틈없이 차곡차곡 밀어 넣고 자물쇠를 굳게 채웠습니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가방 지퍼를 끝까지 올리는 순간, '아, 정말로 오사카와 헤어질 시간이 성큼 내 눈앞에 다가왔구나'라는 생각에 콧등이 시큰해지며 여행의 마지막이란 현실을 피부로 깊게 실감했습니다.
4. 체크아웃 그리고 덴노지를 향해 마지막 일정을 띄우다
오전 10시 35분, 한쪽으로는 제 휠체어 손잡이를 묵묵히 밀고, 다른 한쪽으로는 무거운 캐리어 손잡이를 끌어안은 씩씩한 부모님과 함께 22층 메인 프런트로 내려왔습니다. 유창하지 않은 영어지만 눈치껏 바우처와 객실 키를 반납하며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모든 체크아웃 절차를 마무리했습니다. 호텔 문 밖으로 나서기 전, 1층 로비 한편에 우두커니 세워져 있던 거대한 유광 벽면 앞에서, 마치 거울처럼 선명하게 비치는 우리 모습을 향해 세 식구가 옹기종기 뺨을 맞대고 모여 웃음꽃이 만개한 기념 거울 샷을 남겼습니다. 이 사진 속 우리 가족의 미소에, 고생 끝에 낙이 온 이 2박 3일의 위대한 여정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는 듯했습니다.
이제 이 육중한 캐리어를 끌고 지하철을 통해 우리의 최종 목적지 일정을 향해 나아가야 할 타이밍입니다. 10시 52분, 역으로 향하는 통로 중간에 잠시 멈춰 선 저는 재빨리 구글맵 애플리케이션을 가동했습니다. 저희의 오늘 오전 1순위 목적지이자 오사카 최고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하루카스 300' 전망대가 위치한 덴노지(天王寺)역까지, 출발지인 오사카 메트로 난바역(미도스지선)에서부터 환승 없이 한 번에 질주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 무단차 배리어프리 편의 루트를 아주 세밀하고 정확하게 검색했습니다.
머릿속 시뮬레이션 끝에 완벽한 동선 계획이 확정되자, 저는 침을 꼴깍 삼키고 우렁차게 "자, 갑시다!"라고 외쳤습니다. 피곤함은 털어내고 짐 가방을 둘러업은 우리 위대한 휠체어 특공대 삼총사의 오사카 제3막, 짐 가방과 함께하는 덴노지 정복 모험이 드디어 화려하고 비장하게 막을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