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카 카드 세 장을 무사히 손에 넣고, 이제 진짜 오사카 시내로의 대장정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17시 8분, 간사이 공항역 난카이(南海) 전철 개찰구 앞에 섰습니다. 기획자로서 부모님을 난바(なんば)까지 안전하게 데려가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코앞에 다가왔건만, 솔직히 마음 한구석에는 불안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플랫폼과 전철 사이 틈에 바퀴가 빠지면 어떡하지?", "전동이 아니라 수동 휠체어라 경사로(슬로프)가 없으면 아버지 혼자 어떻게 올리시지?" 한국에서 기차를 탈 때도 가끔 진땀을 빼곤 했기 때문입니다.
1. "도와드릴까요?" — 역무원이 먼저 건넨 한마디
개찰구를 지나 플랫폼으로 향하려는 찰나,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개찰구 안쪽에서 근무 중이던 역무원 한 분이 제 휠체어를 보더니 자리에서 벗어나 먼저 다가와 공손하게 말을 건넸습니다.
「お手伝いしましょうか?」 (오테츠다이 시마쇼카? — 도와드릴까요?)
저는 물어볼 틈도 없이 역무원이 선제적으로 다가온 것에 약간 당황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제가 먼저 "저 휠체어인데요, 슬로프 부탁드립니다"라고 요청하거나, 코레일 앱으로 사전 예약을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여기서는 제가 아무 말도 하기 전에 역무원이 먼저 상황을 파악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준 것입니다.
저는 반갑게 "はい、お願いします(네, 부탁드립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역무원은 곧바로 물었습니다.
「どちらまで行かれますか?」 (도치라마데 이카레마스카? — 어디까지 가시나요?)
"なんば駅まで(난바역까지요)"라고 대답하자, 역무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전기를 들었습니다. 무전의 내용은 대략 이랬습니다. "간사이 공항역에서 휠체어 승객 한 분이 난바역까지 가십니다. 도착 시 슬로프 준비 부탁드립니다." 출발역에서 도착역까지의 연계를 무전 한 통으로 즉시 완성시킨 것입니다.
2. 슬로프가 놓이는 순간 — 간극이 사라지다
17시 12분, 난카이 특급 열차가 플랫폼으로 미끄러져 들어왔습니다. 역무원은 미리 접이식 슬로프(스로프)를 들고 열차 문 앞에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열차가 정차하고 문이 열리는 동시에, 역무원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플랫폼과 열차 바닥 사이의 틈과 단차를 슬로프로 메워주었습니다.
아버지가 뒤에서 휠체어를 밀어 슬로프 위를 천천히 올라갔고, 바퀴 하나 걸리는 일 없이 매끄럽게 객차 안으로 진입했습니다. 역무원은 저희가 무사히 탑승한 것을 확인한 뒤 "도착역에도 직원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편안한 여행 되세요"라는 말과 함께 가벼운 목례를 건넸습니다. 그 짧은 1분의 서비스가, 휠체어에 앉아있는 저에게는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 같은 안도감을 주었습니다.
3. 열차 안에서 — 옆자리 할머니와의 일본어 대화
열차가 출발하고 약 1시간의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휠체어 전용 좌석 겸 다목적 공간에 자리를 잡은 저의 옆으로 한 일본인 할머니가 앉아 계셨습니다. 17시 25분쯤, 저는 궁금한 마음에 스마트폰 번역기를 꺼내 "혹시 어디서 내리시나요?"라는 한국어를 일본어로 번역해 할머니에게 보여드렸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화면을 한참 들여다보시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씀하셨습니다.
「小さくて見えないわ」 (치이사쿠테 미에나이와 — 글자가 작아서 안 보여요)
그래서 저는 용기를 내어 목소리로 직접 말씀드렸습니다.
"もし、どこで降りますか?" (혹시, 어디서 내리세요?)
할머니는 제 발음을 알아들으시고 환하게 웃으며 대답해 주셨습니다.
「最後に」 (사이고니 — 마지막에요)
저는 확인차 "なんば駅?"이라고 다시 여쭤보니,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같은 목적지라는 사실에 괜히 동지애가 느껴져 서로 미소를 나누었습니다. 비록 짧은 대화였지만 한국에서 독학으로 갈고닦은 일본어가 실전에서 통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뻤습니다. 발음이 다소 부정확한 저의 말을 할머니가 한 번에 알아들어 주셨다는 것도 큰 용기가 되었습니다.
4. 난바역 도착 — 약속대로 기다리고 있던 슬로프
18시 20분, 약 1시간 10분의 여정 끝에 난카이 난바역에 도착했습니다. 운임은 1인당 970엔(3인 합계 2,910엔)이 이코카 카드에서 자동으로 빠져나갔습니다. 열차 문이 열리는 순간, 과연 간사이 공항역 역무원의 말대로 난바역 플랫폼에도 슬로프를 든 역무원이 미리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역무원이 문 앞에 슬로프를 깔아주자 아버지가 휠체어를 밀어 부드럽게 하차했습니다. 탑승부터 하차까지, 출발역과 도착역의 역무원이 무전으로 연계하여 한 치의 빈틈도 없이 휠체어 승객을 인수인계하는 이 시스템은 정말 감탄스러웠습니다. 한국에서도 코레일의 장애인 편의 서비스가 잘 갖춰져 있지만, 역무원이 '먼저' 다가와 물어봐 주는 이 선제적인 친절은 한 차원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5. 기획자의 휠체어 전철 탑승 꿀팁
📋 사전 준비
- 이코카 카드 미리 구입: 개찰구에서 매번 표를 사는 것보다 IC 카드 터치가 압도적으로 빠르고 편합니다.
- 목적지 역 이름 일본어로 메모: "なんば駅" 처럼 일본어로 적어둔 메모를 보여주면 의사소통이 훨씬 수월합니다.
📋 탑승 시
- 역무원에게 먼저 요청하지 않아도 됩니다: 일본 대부분의 역에서 휠체어가 보이면 역무원이 먼저 다가옵니다. 하지만 만약 아무도 오지 않으면 개찰구 직원에게 "슬로프 오네가이시마스(スロープお願いします)"라고 말하면 됩니다.
- 도착역 연락은 알아서 해줍니다: 출발역 역무원이 무전으로 도착역에 통보하기 때문에, 승객이 따로 도착역에 연락할 필요가 없습니다.
📋 하차 시
- 문이 열리면 잠시 기다리세요: 역무원이 슬로프를 깔 때까지 서두르지 않아도 됩니다. 열차는 역무원의 확인 신호가 있을 때까지 출발하지 않습니다.
마무리하며
17시 8분 역무원의 따뜻한 한마디 "도와드릴까요?"로 시작된 전철 탑승은, 18시 20분 난바역에서 슬로프를 타고 내리는 순간까지 단 한 번의 불편함도 없이 완벽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약 50분간의 열차 여행 동안 옆자리 할머니와 일본어로 대화까지 나누며, 여행의 기대감은 한껏 부풀어 올랐습니다.
플랫폼에 내려선 아버지의 표정에도 안도감이 가득했습니다. 캐리어를 끄는 어머니도 "일본 사람들 정말 친절하다"며 연신 감탄하셨습니다. 저는 휠체어에 앉아 난바역의 거대한 천장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생각했습니다. '역무원 한 명의 10초짜리 배려가 휠체어 여행객 한 가족의 하루를 통째로 바꿀 수 있구나.'
"자, 이제 숙소로 갑시다! 난바의 밤거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